벌써 일을 잠깐 쉬기 시작한 지도 한달이 거의 다 되어간다.
이전부터 쉬는 것과 관련해서 꼭 한번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중에 가장 많이 망설여지고 고민이 많이 되었던 글이다. 이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쓸 필요가 있을까, 너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등등..
하지만 정말 소중하게 잡은 기회이기도 했고, 지금이 아니면 남길 수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한 분에게라도 이 글로 도움을 드릴 수 있거나 영감을 얻게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국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 쉬는 것을 결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왜? 뭐 때문에 쉬려고? 쉬면서는 뭐하고 지내게?”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 속에 생각하던 걸 명백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을까?
쉬기로 결심한 이유가 ‘그냥’이라서매번 제대로 대답이 안 나오길래 ‘나에게 진짜 이유가 없어서, 하고 싶은게 없어서 이러는 것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내가 쉬어야겠다고 생각이 든 것이 ‘그냥’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아예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부차적인 이유이지 이것이 큰 이유는 아니었다. 어차피 쉬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이게 가장 가까운 정답인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여러 이유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머릿속에 많지만 말로는 표현이 잘 되지 않았다. 나에게서도 아직 구조화가 되지 않아서 말로도 잘 표현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 나에게는 말보다는 글이 훨씬 편하기에, 한번 기록을 남길 겸 글로 먼저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쉼을 결심한 이유
사실 나는 여태까지 쉰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 항상 바쁘게 살아야지만 잘 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취미활동보다는 일과 외부활동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쉬지 않아온 것은 아니지만.. 놀아도 의미있게 놀아야만 할 것 같았고 여행에 가서도 일어나서 잠들기 직전까지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어딘가를 다니며 알차게 보내야만 마음이 편했다. 어떻게 보면 바쁘게 사는 것에 중독되어 지내왔던 것 같다.
업무에서도 당연하게도 그런 특성이 나타났는데, 문제는 그다지 바쁠 시기가 아닌데도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투자한 시간만큼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해내는건 많이 없으면서 바쁜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팀원에게 이 일을 맡겼으면 금방 끝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힘들게 만들고 있었고 쓸데없이 눈치가 너무 많이 보였다. 돌이켜보면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었고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상황이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나마 그런 힘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회사 밖에서도 스스로 바쁘게 만들면서 가능해졌다. 오픈소스 컨트리뷰톤, 가짜연구소, 글또 등등.. 이것저것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나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활동을 할 때마다 감사하게도 생각치 못했던 좋은 기회들이 찾아오면서 자기효능감이 생긴 덕분인지 삶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져 갔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체력으로 생각하고 몸을 굴렸던 탓인지 몸에서 조금씩 이상 신호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심각한 증상들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20대 이후에 가장 많이 병원을 다녔던 해였고, 건강은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원해도 할 수 없겠구나 하고 건강의 중요성을 느꼈다.
나 스스로를 좀 챙겨야겠다고 생각이 들던 찰나에, 회사에서 작년에 신설했던 3년 이상 근속한 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6개월 동안 쉬고 올 수 있는 제도가 떠올랐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에게 몇달 간 아무것도 없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하고 한번 나 자신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있고 한창 모두가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자리를 비우면 그야말로 큰일이 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를 잘 해내고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쉬고 싶은 마음보다 훨씬 컸다. 다행히도 연말에 맡고 있던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간다 싶었고, 여러 상황을 따져봤을 때 지금이 아니면 더 이런 기회를 잡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회사도 상대적으로 덜 바쁜 시기라고 느껴졌던 지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3달 간의 휴직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휴직한다고 했을 때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주변에서 참 많이 들었는데, 사실 번아웃이 온 것(또는 알아챈 것)은 역설적으로 휴직을 결정한 이후였다. 자세히 풀어낼 수는 없지만, 내 이런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회사에 불만이 있어서 무작정 일 안하겠다는 것으로 인식되는 듯한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있기도 했고, 더더욱 눈치가 보이면서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겹겹이 찾아왔다. 이럴거면 이 제도가 왜 만들어진건지, 나는 이렇게 힘들어할거면 왜 휴직한다고 했을까 후회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어쨌든 회사의 리소스를 잠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내가 중단시킨 것이기도 하니까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들 덕분에 더욱 이 휴직기간이 간절하고 감사하게 느껴졌고, 돌이켜보면 내가 계속 커리어를 유지하고 달리려면 너무나도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당시 이런 선택과 결정을 내려준 나에게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휴직 D+24, 지내온 것들
사실 딱 쉬는 동안 어떤거를 하고야 말겠다!!하고 생각했던 것은 없었고, 일부러 정하고 싶지 않았다. 할 것들을 정했는데 휴직기간이 끝났을 때 그걸 이루지 못했으면 오히려 더 힘들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직을 시작한 주에는 바로 해외로 떠났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친구랑 달랏-나트랑을 다녀왔는데, 여유를 가지고 휴양을 하고 오자는 것 치고는..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알차게 지내다가 왔다ㅎㅎ; 그래도 가고 싶던 곳들, 하고 싶던 것들을 거의 다 하고 와서 후회 없이 행복한 여행이었다.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많은 배려를 해 준 친구에게도 정말 고마웠다.
돌아와서는 가까운 지인에게 닌텐도를 빌려 하루종일 닌텐도만 해보기도 하고, 서점에 가서 몇시간 동안 서서 책 한권을 다 읽고 나오기도 했다. 이전부터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있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공부도 어느 정도 해야할 것 같은 마음에 기술 서적도 보고 있지만, 최대한 여유롭게 지내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한번 쯤 혼자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바로 그 다음주 제주도 항공권을 끊었다. 혼자 여행을 가면 스스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디지털 노마드(?)를 실현해보고 싶기도 했어서 코워킹스페이스가 있는 숙소를 섞어서 예약하고 다녀왔다. 가서는 최대한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많이 들어보려고 하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해보았다. 전날 계획을 다 정했다가도 엄청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아서 바로 방향을 틀기도 하고, 버스타고 잠들었다가 깼더니 유채꽃밭이 펼쳐져있길래 무작정 내려서 사진을 왕창 찍다 가기도 했다. 이전에는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그런 틀을 깨보니 너무 재밌었고 내가 진짜 원하던 걸 알아내는 방법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해서 자기 전에는 다이어리를, 일어나서는 모닝페이지를 써보려고 하고 있다. 이전부터 글을 쓰면 감정이 잘 정리되기도 했고 실제로 글로 감정 표출을 하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모닝페이지는 아침에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패하고 있는 날이 더 많지만^_ㅠ.. 야행성인 덕분에 다이어리는 나름대로 차곡차곡 써오고 있고 실제로 오늘의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느꼈는지 알 수 있는 등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전에는 이런 데일리한 것들은 매일 써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런 강박을 내려놓으니 더 잘 쓰게되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번외로 글또 분들과 감사회고를 같이 작성하고 있는 것도 정말 좋은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면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도록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면서 감사하면서 신기하기도 하다. 실제로 말을 할 때도 감사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혼자 감사일기를 썼다면 얼마 못가서 그만했을거라 같이 쓰고 계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Action items - 남은 기간 동안 하고 싶은 것
이렇게 약 3주가 지났는데, 문제는 목표 없이 시간을 보내려다보니 하루를 허비하는 날이 많아졌다.
(실제로 새벽 5시에 자서 오후 1시에 일어나서 정신차리면 저녁 먹을 시간인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 많아질수록 쉬어서 즐거워하는 마음보다 아쉬워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도 나름 3달이라는 1분기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 만큼, 남은 기간에 해야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정해보았다.
1. 건강 챙기기
휴직하고 가장 먼저 신경썼어야 하는 부분이 건강인데.. 시간이 있어도 운동을 안하는걸 보고 시간이 없다는건 역시나 핑계였구나 싶었다😅
2월 안에는 꼭 하나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평소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운동을 일일 체험이라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일단 하나는 제주도에서 요가 원데이클래스로 체험했는데, 이전에 해봤던 필라테스랑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하루의 시작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하지만 좀 더 도전적인 운동을 해보고 싶기에.. 근력 운동에 좋다고 팀원분께서 추천해주셨던 클라이밍이나 아직 용기는 안나지만 폴 댄스도 한번 해봐도 재밌을 것 같다..!
여러가지 시도해보면서 휴직 이후에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겠다💪🏻
운동뿐만 아니라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먹는 것도 좀 더 신경써서 챙길 수 있도록 해야할 것 같다.
이전에 음식 사진으로 종류랑 칼로리를 알아서 계산해주는 '다이어트 카메라 AI'라는 것을 써봤었는데,
다시 데이터를 쌓고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사용해보면서 관리해봐야겠다.
2. 실력 다지기
업무를 하면 할수록 부족하다고 느껴졌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놓쳤던 것들을 챙겨보려고 한다.
이런 것들 한다고 주변에서 들으면 쉰다고 하면서 쉬는게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있을 때 해놔야 후회되지 않을 것 같았고, 지금 연차에서 이런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지 않을까 싶어 놓을 수 없었다🥲
- [책+강의] 혼자 공부하는 운영체제+컴퓨터기초 / [프로그램] 코드트리 알고리즘 공부
: CS 기초 지식은 복수전공을 하면서 중요한지도 모르고 그저 어렵다고 소홀히 여겼던 부분이었는데, 업무에서 그 문제점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매번 걸림돌이 시간이 주어진 만큼 이런 부분은 꼭 챙겨서 가야할 것 같다. 감사하게도 이런 시기에 글또를 통해서 코드트리 서비스를 이용해볼 수 있게 되었다. 운영체제+컴퓨터구조 책, 강의랑 함께 평소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알고리즘 공부도 같이 채워나가려고 한다. - [책+스터디] CPython 파헤치기
: CS 기초 지식을 그냥 무작정 공부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전부터 파이썬 내부를 살펴보면서 공부하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싶었던 영역이었다. 마침 가짜연구소에서 새로운 스터디 빌더를 모집한다길래 무작정 신청해버렸다. 지금까지 계속 스터디에 참여해오기만 해서 잘 운영할 수 있을까 걱정반 기대반인 마음이지만, 좋은 분들과 함께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 [강의+시험] CKA 자격증
: 이건 회사에서 지원해준 부분이라 무조건 해야하는 부분이다. 작년 말에 잠깐 공부를 했었는데 내부 기초적인 부분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자격증에 필요한 내용을 겉핥기로 가볍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게 살펴보는 연습도 하면서 준비해보려고 한다. - [책] 빅데이터를 지탱하는 기술 / [강의] udemy spark, kafka 강의
: 마지막으로 데이터 엔지니어링에 대해서도 많이 모르고 있는 부분을 채워나가고 싶다. 빅지기 책은 이전부터 읽고 싶었던 거라 반 정도 이미 읽긴 했지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해야겠다. 글또를 통해 감사히 들을 수 있게 된 udemy 강의들도 잘 들으면서 평소 궁금하던 spark와 kafka도 잘 배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다 끝내면 좋겠지만, 이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끝내면 좋을 것 같다ㅎㅎ..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있더라도 너무 자책하지는 말고 그런대로 휴직 이후에도 이어서 잘 해나갈 수 있길..!!
3. 마음 챙기기
사실 돌아가서 다시 열심히 달리려면 이 부분을 가장 많이 신경써야 할 것 같다.
우선 나에 대해서 더 잘 알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순간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모닝페이지, 다이어리, 감사일기 등으로 꾸준히 기록하고,
여러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도 어떻게 해야 내 이야기를 들으며 더 잘 판단할 수 있을지 찾아나가려고 한다.
또한 얼마전에 깨달은 것이었는데,
심리학이나 뇌과학 관련 책도 나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2주에 1번씩은 서점에 가서 관련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것 중 하나가 혼자 여행이라고 느껴졌어서,
돌아가기 직전인 3월 말에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준다는 마음으로 호주나 유럽에 다녀와보려고 한다.
사실 쉬는 기간이 끝났을 때 아무것도 한게 없더라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갖춰진다면 쉬길 참 잘했다는 마음이 들 것 같다. (물론 갖춰지지 않더라도 이미 쉬기는 잘한 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ChatGPT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응원의 메세지를 부탁해보았다.
매번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친구라는 생각에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조금은 솔직담백하게 쓴 이 글이 어느 누군가에게, 또는 미래의 나에게 작은 도움이나 인사이트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며,
GPT가 말해주듯이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매 순간을 즐기면서 행복을 발견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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